변하지 않는 건 없다.

스물셋.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세상에 태어나서 빛을 본 이후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만큼을 살았다.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부대끼며 이 복잡하고도 험난한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씩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대아닌 기대를 하게된다.

순진한 기대라기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대를 하며 살고 그렇게 실망하고 또 새로운 기대를 하며 산다.
나도 그래왔고.

어쩌면 삶은 로또같은건지도 모르겠다.
1등에 당첨되면 이것도 하고싶고 저것도 하고싶은 기대감에 즐거워하며 토요일 7시 45분을 기다리다가 그렇게 실망하고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말하며 또다른 기대를 하며 살아가고…

아직은 세상이 어떤건지 잘 모르겠지만 더 오래 지난다고 알 것 같지도 않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걸 알면서도 또 어떤것에 기대는 걸 보면 말이다.
이마저도 그저 마음이 가벼워지기 위한 변명이라 생각하면서-

어렵다. 그리고 가벼워지고싶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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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명월 촬영중단, 백번 양보해도 한예슬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

최근 한예슬의 촬영거부로 촬영은 물론 방영까지 일시 중단됐던 스파이명월에 대한 일련의 사태를 보고있자니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있구나 라는걸 또 한번 느낀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더구나 생방송처럼 방송 당일까지 촬영하고 편집해서 방송 몇시간 전에 테이프 만들어내고 공중파에 내보내야 하는 지금의 드라마 제작환경에서는 연예인뿐 아니라 같이 뛰는 스텝들이나 촬영감독 PD, 그리고 분량이 얼마 안되는 단역배우들마저도 다 함께 희생한다고 한다.

제목부터 ‘한예슬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라고 썼으니 오해가 생길 법도 하겠다.
한예슬만 나쁘다고 말하고싶은 건 아니다.
한예슬이 촬영에 늦었던 날 스파이명월 대본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 방영되었다고 한다.

정말 저렇게 수정된 대본인 지는 진위여부를 확인한 바 없어 잘 모르겠지만 돌고도는 소문에 따르자면 그렇다고 하니 그렇다 치고, 저정도면 작가(및 해당 대본에 동의한 제작진)의 인격도 그리 대단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저렇게 모욕을 주는건 인격모독이니까.

어쨌든 한예슬은 촬영을 거부하고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한 말이 참 가관이다.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싶습니다.’

한예슬을 놓고 인터넷에서는 한예슬이 나쁘다, 한예슬은 피해자다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누구는 ‘밤낮으로 부려먹어서 살기위해 도망간 노예보고 왜 도망갔냐고 비난하는 꼴’이라고 말하기도, ‘무단으로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고 미국으로 간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 이라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한예슬은 노예도 아니고 잘한것도 없다.

한때 꽤 번화가에 있는 매장에서 일을 했었다.
그때 같이 일했던 한 직원분은 꼭 일을 못할만큼 아프면서도 꼭 시간맞춰 매장에 도착했다.
어떻게보면 좀 미련해보이기까지 했었는데, 왜 굳이 아픈데 쉬지않고 무리를 하느냐고 딱히 물어볼만한 기회가 없었다.
언젠가 그분이 정말 몸이 안좋았는지 매장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전화로 ‘몸이 안좋지만 늦게라도 가겠다, 정말 미안하다’며 두시간쯤 늦게 매장에 도착했다.
정말 딱 봐도 몰골이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책임자분이 ‘오늘 쉬어라’고 말했는데, 그때 왜 굳이 그렇게 무리해서 매장에 왔느냐고 물어봤었다.

‘내가 정해준 근무수칙에 따라 근무하기로 했고, 지정된 출근시간에 오는건 작게는 매장과의 약속이고, 넓게 보면 매장에 찾아올 손님들과의 약속이지 않은가? 내가 정말 힘들어서 일을 할 수 없으니 쉬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분이 미련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돌아보면서 미안하기도하고 나 자신이 보고 배워야 할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항간에 도는 그간의 소식을 보면 한예슬은 이전부터 촬영시간을 잘 지키고 성실한 여배우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실인지도 모를 소문때문에 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만, 차라리 촬영거부 이전부터 촬영에 협조적으로 임하는 성실한 여배우의 모습이었다면 아니, 성실하지 못하다는 소문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미국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분명 한예슬이란 여배우가 지금의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고 봤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열악한 환경에 노예처럼 부려먹어놓고 도망간사람 다그치는 꼴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활동하고있는 연예인 치고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데 타의에 의해 연예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들 앞에 나서고 그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 나선 그들이지않은가.
근무조건이 아무리 열악하고 힘들어도 그 길을 자기발로 선택해 걸어들어간 사람들을 노예라고 말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힘들게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는 진짜 노예들에 대한 실례다. 그들이 회당 얼마를 받느냐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 대해 표현하는 방법이 그리 책임감있는 처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무조건 해야한다’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해서 열악한 환경에 무조건 따르는 것만이 책임감있는 처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말이다.

진위여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성실하지 못하다고 소문난 여배우가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한국인도 아니면서 한국에 와서 연예인이 되겠다고 왔고, 드라마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그런데도 무책임하게 촬영현장에 무단으로 불참하고 미국을 갔다.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서든 누구를 위해서든 그녀의 처신은 절대 ‘옳은 일’이라고 보기 힘들다. 동료배우인 에릭의 말대로 미래의 후배들보다 더 중요한건 현장에서 함께 뛰고있는 스텝들이란 말도 일리가 있다.
무엇을 위해서였든 한예슬이 지금의 드라마 제작환경이 잘못됐다고 느끼고 고치려 했다면, 몸이 아프다고 병원에서 링거맞는 사진찍어 보낼것이 아니라, 촬영장에 무단으로 나타나지 않고 미국에 갈 것이 아니라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촬영장에서 아프고 촬영장에서 촬영을 거부했어야 한다. 그것이 소신이고 책임감이다.
연예인들을 우상처럼 여기는 어린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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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밥이 장난이냐?

요즘 정치판은 서울시의 무상급식 논란으로 시끌시끌하다.
애들 밥주는 문제로 주민투표까지 발의하다니 이게 웬 막장인가 싶다.

평소에 정치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일을 벌이고있는지 신경쓸 시간이 없으니 잘 모르고있다가 뒤늦게 이 상황을 들여다보니 이건 뭐 논리도 없고 곱게 밥을 주겠다는것도 아니고 거기에 놀아나고있는 기분이 들어 불쾌하기까지 하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논란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가 가장 객관적으로 정리된 것 같으니 이쪽을 참고하는게 좋겠다.

일단 내 의견부터 툭 까놓고 얘기하자면 난 이 무상급식, 반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보편적 복지’를 말하기도, ‘공공교육서비스’를 말하기도 하는데 보편적 복지를 말하려면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시행을 하는게 맞는것(그 이유는 아래서 설명하기로 한다.)이라고 생각하고, ‘공공교육서비스’라는 측면으로 접근해서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들면 벌써부터 예산을 편성해서 당장 내년부터 밥을 주겠다 라고 나와서는 안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건 서울시의회에서 무상급식에 대해 이상한 근거들을 끼워맞추며 밀어붙이기에만 바빴지, 주민들의 찬성/반대가 아니라 지금의 급식에 대한 현황도 모른채 그저 표심얻기에만 급급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에서 보면 주민투표에 대해 시의원들은 ‘지방선거를 통해 우리가 선택받은 것은 우리의 정책에 찬성했기 때문’이라는 언급을 한 바 있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당선될 수 있었던 건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거셌던 것이 일부 작용한 결과고 그들이 이렇다할 정책을 내놓지도 않았으면서 밑도끝도없이 그렇게 말하는 꼴이 우습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공공교육서비스의 일부라고 생각하는게 그나마 더 적합하다고 본다.

현실을 조금 살펴보자.
일단 난 초등학교, 중학교때는 급식이 없어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도, 언제부턴가 급식을 한다고 해서 ‘교실에서 먹는’ 급식을 먹기도 했고 고등학교때는 (수용인원이 대략 120명쯤 되는 중,고등학교가 같이 이용하는)식당에서 급식을 먹었다. 그리고 교육실습을 나갔던 학교는 꽤 큰 큐모의 학생식당에서 급식을 했었다.
외형적인 차이는 이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초등학교때는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영양사가 교실마다 지나다니면서 급식지도를 하기도 하고 학부모회 부모님들이 와서 도와주기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중학교때는 애들이 먹든지 말든지 그냥 냅둬서 줄을 늦게서면 좀 맛있다는 반찬들은 이미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 편식이나 식습관에 대해서 지도하는 경우는 없었다 한차례도.
고등학교때의 학생식당은 직원들이 배식을 균형있게 해주는 편이었지만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줘야 다음사람이 밥을 먹기때문에 지도는 커녕 빨리먹고 일어나라고 하기 바빴던 반면 어떤 학교는 그럴듯하게 갖춰진 학생식당에서 균형있는 배식은 물론, 영양사와 교사들이 상주하면서 식습관에 대한 지도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울시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 부칙 제 1조에 보면 이 조례안의 공포일로부터 시행한다고 되어있다.  학교마다 급식환경도, 급식비도 다른마당에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바로 시행한다니 이게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인가?

무상급식에 대해 알아보다보니 꽤 재미있는 강의를 찾아보게 되었다.
덧 : 강사의 개인적인 견해가 나타나고있긴 하지만 알아서 걸러내고 보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는 세금을 낸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민국은 복지국가’라고 말하고 있고, 그에 따라 국민들이 낸 세금은 국가의 운영과 국민 복지의 증진을 위해 쓰이고 있을것이다.
무상급식 전면시행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복지는 모두가 똑같이 ‘누려야’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감탄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복지혜택인 의료보험, 그걸 모든 국민이 똑같이 혜택을 받고있는걸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등학교다니는 내 사촌동생이나 돈방석에 앉아 사는 이건희회장이나 감기걸려서 동네 병원에 가면 똑같이 진료받고 똑같이 처방을 받는다.
내 사촌동생은 의료보험료를 안내고(부모님이 내기는 하지만), 이건희회장은 그 소득에서 일정비율을 의료보험료로 낸다.
무조건적으로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게’만든게 아니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던 ‘주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근거이기도 하다.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사람이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중에 가장 많이들 하는 질문이 ‘왜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 공짜밥은 주면 안되고 공짜 교육은 받아도 되는가?’ 다.
이건희 회장 손자가 공짜교육을 받고있지도 않지만, 그걸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건 헌법에도 국민 모두가 능력에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있고, 소득이 있는 국민 모두에게 교육세를 받아 평준화된 수준의 교육시설을 통해 공교육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라는건 물질적인 개념이 아니라 가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누구나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건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똑같이 지하철을 공짜로 타야한다는 식의 개념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거동이 점점 힘들어졌을 어르신들에게 별도로 편의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고, 만 65세 이상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무상교육에 대해서는 납득하면서 무상급식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건 사회권인 무상교육은 모두가 평준화된 수준의 교육을 똑같이 받는다는것이지만 무상급식은 모두가 똑같은 음식을 똑같은 양만큼 먹지 않기 때문이고, 무상급식을 공공교육서비스의 일부라고 보더라도 지금의 현실에서는 모두가 평균적인 환경에서 보편적인 식습관에 대한 지도를 받을 수도 없다.

일각에서는 무상급식에 찬성한다면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된다는 몰지각한 여론몰이를 한다.
어쩌다 이나라가 애들 밥그릇을 가지고 저따위 장난질이나 일삼는 짐승만도 못한것들이 이나라 정치를 잡고있는지 한심하고 답답하기 이를데가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무상급식 ‘전면시행’에 반대하는게 아니라 준비된 것 하나 없는 이 상황에 만들어진 ‘무상급식 조례안 부칙 제 1조’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상급식을 ‘하위 50% 계층에계만 시행’한다는 것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무상급식 전면시행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제일 납득하기 어려운 건 가난한 아이가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고 무상급식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한다는 말이다.
가난한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그 세금을 쏟아부을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우습게아는 이 사회를 바로잡아야한다고 말해주고싶다.
그리고 당장 내일부터 50%에게만 무상급식을 지원하겠다는게 아닌이상 거기에 대한 세원확보와 제도적 장치 마련을 할 시간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내가 이 글을 쓰는건 무상급식 전면시행에 대한 찬성/반대에 대해 싸우자고 쓴 글은 아니다.
물론 나도 내 개인적인 견해가 있기때문에, 그리고 내 블로그는 언론이 아니기때문에 개인적인 내 견해가 많이 들어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우리 모두 주민투표에서 각자의 의견을 전달하고 다수가 공감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자.
그리고 한심하게 애들 밥그릇으로 정치싸움하는 저 나쁜새끼들부터 몰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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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

간만에 군대갔다가 이제 막 전역한 후배녀석을 만났다.
나보다 한살 어린 동아리 후배였는데 어느새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다더라. 1학년 2학기라던가?

어쨌거나 나는 학교다니던 6학기 내내 수업마치면 아르바이트를 가야했고, 수업을 마치고나면 그 다음일과는 일단 학교를 벗어나야했으니 동아리 선후배들과는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다. 그렇게 멀어지다보니 어느새 동아리에서 난 제명이 되어있더라.

그래서 그런건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녀석한테 술한잔 하자고 했더니 선뜻 오겠다그래서 사실 당황하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반가웠다. 어떻게보면 이제 난 동아리활동을 하지 않으니 서로 마주칠 일도 딱히 없을텐데 이렇게라도 얼굴 마주하고 술한잔 마시면서 웃고 떠들 수 있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한자중에 ‘사람 인’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있는 형상을 본떠 만든 문자라고 한다. 요즘처럼 각박해져만 가는 시대에 특별한 목적 없이 만나 웃고 떠들 수 있다는건 참 고마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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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vent

그러고보면 ‘블로그’라는 툴을 사용한지도 벌써 6년반쯤 되는 것 같다.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개인 홈페이지라는걸 만들었던게 초등학교 3학년때던가?
어쨌거나 1997년에 만들었던 홈페이지는 그저 간단한 수준의 HTML코딩과 CGI 게시판서비스를 갖다 붙였던 그게 전부였던것 같다. 컴퓨터 좀 한다는 친구들과 게시판에 방명록에 글 남기고 댓글달고 했던 별볼일없는 그것.

언제부턴가 싸이월드라는 서비스가 생겼다. 그것도 초등학교때로 기억된다.
그걸 1999년부터 썼던가- 어쨌든 싸이월드라는 사이트에서 2001년엔가 ‘미니홈피’ 라는게 생겨나면서부터 그때 만들어뒀던 홈페이지는 거의 버려뒀다. 지금도 찾으면 있으려나?

그때도 어렸지만 딴에는 머리 좀 컸다고 디지털카메라 들고다니며 사진찍고 올리는 재미에 한참 빠져들때쯤, 조그마한 ‘미니홈피’라는 틀에 질리기 시작했다.
뭔가 좀 바꿔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미니홈피는 내가 찍은 사진을 Wallpaper로 깐다든가 배치를 바꾼다든가 그런게 허용이 되지 않았다. 될 리가 없지- 스킨 팔아야되는데-
그렇다고 다른 포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서비스를 쓰자니 그것도 영 탐탁치 않았다.
그저 넓은 화면의 미니홈피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어렸을 때 홈페이지도 만들어봤고, 미니홈피를 이용하면서 사진도 올리고 친구들하고 이런저런 댓글 주고받는 재미도 느껴봤으니 이젠 그 틀을 내가 다시 만들어보자고 2005년 2월 블로그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도메인과 호스팅비 합쳐 1년에 3만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투자해 테터툴즈 블로그를 만들었다.

친구들사이에서는 블로그라는 개념이 흔치 않았던, 아니 그땐 블로그 자체가 흔치 않았던 때라 그랬는지, 그냥 나혼자 만들고 나혼자 쓰는 뭐 그런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내 질려버려 다 지워버리고 또 새로만들고 하다가 블로그를 통해 몇몇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고 -지금은 연락도 안닿지만- 그렇게 또 새로운 재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고3이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블로그와 멀어지게 됐고, 대학교를 가고 나니 트위터, 미투데이같은 단문블로그-지금은 SNS라고 부르는-서비스들이 생겨났다.

이것저것 다 찔러봤으니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재밌고 그렇기는 한데, 언제부턴가 이미 있는 틀에 나를 다시 끼워맞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7년 인터넷을 처음 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Carlspire라는 ID를 사용해왔는지라 지금도 내 ID를 말하면 ‘아 들어봤어요’ 내지는 ‘아 그분이요?’ 라고 말하는사람이 있긴 하다만,
그사람들이 날 그리 평범하게 기억하고있지는 않을것같다. 워낙 특이했어야지…

스무살 이후 하는둥 마는둥 여기저기 흩어져버린 내 조각들을 다시 끌어모아보련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이야기들.

The Avant on Air_ The Park Ave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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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_

 In the beginning, Lee, Cark K. created the Carlspire.com and blog by Word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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